생명을 품은 믿음의 발자취
생애 기본 정보
호는 대암(大岩), 자는 원일(元一). 1883년 11월 23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아버지 이질과 어머니 박평암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농가의 장남이었고, 어릴 적에는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습니다. 1906년 돈을 벌기 위해 상경했고, 기독교 선교사의 도움으로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해 1911년 6월 제2회 졸업생으로 의사가 되었습니다. GrandcultureKmib
독립운동에 눈뜨다
세브란스 재학 시절 은사 김필순의 의형제였던 안창호와 친분을 쌓으며 독립운동에 뜻을 두게 됩니다.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김구, 안명근, 윤치호 등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검거되자, 이를 피해 중국 난징으로 망명했습니다. Namu WikiIdomin
몽골로, 그리고 동의의국
1914년 김규식의 권유로 몽골로 이주합니다. 본래 김규식과 함께 몽골에서 독립전쟁을 위한 장교 양성학교를 세울 계획이었지만 자금 조달에 실패했고, 대신 몽골 고륜(현 울란바토르)에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열었습니다. 이곳은 치료소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 역할을 겸했습니다. WikipediaIdomin
당시 몽골인의 70%가 앓고 있던 성병 치료에 특히 탁월한 실력을 보이며 신망을 얻었고, 1919년에는 몽골 최고 훈장인 '에르데니인 오치르'를 받았습니다. 복드 칸이 그 소식을 듣고 그를 자신의 어의로 임명했다고 전해집니다. Namu WikiWikipedia
빼앗긴 땅에서 낯선 땅으로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스승과 동지들이 줄줄이 끌려가던 그해, 이태준은 붙잡히지 않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1914년, 사촌 처남 김규식의 권유를 따라 몽골 고륜, 지금의 울란바토르에 이르렀다. 조국도 아니고,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땅. 성경 속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려 낯선 애굽 땅으로 끌려갔듯, 이태준 역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역만리에 던져졌다.
그러나 그는 그 땅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기 길을 가다가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갔다"(는 말씀처럼, 그는 낯선 땅의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동의의국(同義醫局)이라는 이름의 작은 병원을 열고, 몽골인 열에 일곱이 앓던 병을 고쳐주기 시작했다.
독립자금의 통로
몽골에서 의사로 번 돈 대부분을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썼고, 그의 병원은 몽골과 중국을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과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쉼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일화도 있는데, '마자르'라는 별칭의 폭탄기술자를 의열단에 소개해준 적이 있고, 이 폭탄은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의거에 쓰였습니다. '마자르'는 헝가리 출신으로 알려져 붙은 별명이었는데, 2025년에야 실제로 헝가리인 폭탄기술자 가보르 마자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Prkorea + 2
최후
1921년, 38세의 나이에 일본 제국주의와 연결된 러시아 군대에 의해 피살당했습니다. 정확히는 백군 지도자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부대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여운형이 1921년 가을 그의 묘를 찾았고, 15년 뒤인 1936년 잡지에 그를 애도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김규식과 조소앙도 각각 그를 회상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PrkoreaGrandculture
오늘날의 기억
이태준은 1980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 애족장을 서훈받았습니다. 2001년 7월 울란바토르에 그를 기리는 기념공원이 조성되었는데, 연세대 의과대학과 몽골 주재 한국 대사관의 노력, 몽골 정부의 부지 제공, 연세대 의과대학 동창회의 비용 조달로 이루어졌습니다. 고향 함안에도 2021년 옛 군북역 터에 대암 이태준 기념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GrandcultureKmib
그리고 바로 오늘, 이재명 대통령이 울란바타르의 이태준 기념관을 찾아 가묘에 헌화했습니다. 전시관 입구에 적힌 몽골어 속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문구가 이태준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을 연상시킨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해집니다. Khan
이태준 선생의 이야기, 앞서 쓰신 "별을 보는 지혜"의 결과 참 잘 맞아떨어지네요. 낯선 광야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표지를 따라 걸었던 두 세대의 청년들 — 그 흐름을 더 깊이 다룬 후속 편 에클레시아 시인
ⓒ 에클레시아 | @yuneunhe71 | CC BY-NC-ND 4.0
광야의 인술 — 대암 이태준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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